다중 우주와 존재론
실재란 무엇인가?
서론: 우리가 실재라고 믿는 것은 진짜 실재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진짜일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촉각으로 느끼는 이 현실이 과연 ‘실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철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물음 중 하나이며, 특히 존재론(ontology)의 핵심을 이룬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의 한 축인 다중 우주(multiverse) 이론은 이 질문을 과학의 영역으로 다시 불러온다.
만약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현실들이 존재한다면,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더 이상 철학자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물리학자와 수학자, 심지어 인간 의식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에게도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존재론의 기초: 실재란 무엇인가?
존재론은 "존재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의 한 분과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는 변화하는 모든 것은 환상이며, 존재란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며, 존재 자체를 유동적 개념으로 보았다.
현대 존재론은 존재를 **물리적 실재(physical reality)**와 **형이상학적 실재(metaphysical reality)**로 나누어 본다. 물리적 실재는 관측 가능한 우주, 즉 우리가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세계다. 형이상학적 실재는 인간의 경험 너머에 있는 세계, 혹은 수학적 존재처럼 인식은 가능하지만 감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중 우주 이론은 바로 이 두 영역의 경계를 허문다.
다중 우주가 실재의 개념을 어떻게 바꾸는가
다중 우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외에도 수많은 현실이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각기 다른 물리 법칙을 가진 우주들, 다른 선택이 이루어진 평행 세계들, 심지어 수학적으로 정의만 가능한 구조적 우주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이론은 존재의 정의를 상대화한다.
즉, 실재란 우리가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측정 가능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구조를 포함하게 된다.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는 이를 레벨 4 다중 우주로 정의하며, 수학적으로 가능한 모든 우주는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단지 하나의 수학 구조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 주장은 존재론적으로 볼 때, 존재란 인식 여부와 무관하게 수학적·논리적으로 성립되는 구조를 의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형이상학과 물리학의 경계가 무너질 때
이처럼 다중 우주는 존재의 범위를 물리적 감각에서 이론적 가능성으로 확장한다. 과거에는 “존재한다”는 말이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다중 우주는 우리가 결코 관측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우주들까지도 실재로 인정하게 만든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과도 닮아 있다.
플라톤은 우리가 감각하는 사물은 불완전한 모상이며, 진정한 실재는 완전하고 보편적인 이데아(형상)라고 주장했다.
다중 우주는 바로 그런 이데아적 세계를 수학적 언어로 표현해낸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실재는 관측 가능한 것인가, 존재 가능한 것인가?
양자역학은 관측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입자의 상태가 확률적으로 겹쳐진 상태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관측 전에는 입자가 존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 원리는 “실재는 관측을 통해 결정된다”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다중 우주 이론은 이런 입장을 넘어서 “모든 가능성은 실제로 실현된다”고 본다.
이는 실재의 기준이 더 이상 관측 여부가 아니라 가능성 자체가 되는 변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존재란 우리가 볼 수 있어서가 아니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존재론의 확장: 나와 세계, 그리고 타자의 실재
다중 우주는 나와 세계, 타자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철학자들은 "타인은 내 인식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다중 우주는 타인의 존재 가능성을 넘어서 수많은 타인이 실재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때 자아의 실재도 상대화된다.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무엇을 느끼는가는 하나의 우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가능성 속 ‘나’의 버전 중 하나일 수 있다.
이로 인해 존재론은 단일한 실재에서 다층적 실재 구조로 확장된다. 존재는 단 하나의 구조가 아니라, 겹쳐지고 분기되는 수많은 층위를 가진 개념이 되는 것이다.
결론: 실재는 단일하지 않다 - 존재론의 패러다임 전환
다중 우주는 실재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는 것”을 단 하나의 기준으로 정의할 수 없다.
이제 존재란 물리적, 수학적, 가능성적, 인식적 차원에서 겹쳐지는 다층적인 개념이다.
다중 우주가 말하는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구성된 구조이며, 그 안에서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단지 하나의 국지적 실재일 뿐이다. 그러나 그 국지성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 현실을 살아가는 주체로서 존재한다.
결국 실재란 ‘존재 가능성’의 범위와 구조를 어디까지 확장하느냐에 따라 계속 재정의될 것이다. 다중 우주는 철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어서,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다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