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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우주와 자유의지

따르릉지식 2025. 8. 6. 21:58

다중 우주와 자유의지

우리가 선택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서론: 내가 선택한 삶인가, 정해진 경로인가?

오늘 우리가 한 선택, 이를테면 아침에 커피를 마실지 말지를 고민한 순간은 자유로운 의지의 결과일까, 아니면 이미 예정된 흐름에 따른 것이었을까?

‘자유의지(free will)’는 인간 존재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개념 중 하나다. 하지만 현대 과학, 특히 **다중 우주 이론(multiverse)**과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은 이러한 자유의지를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가 내린 선택들이 모두 다른 우주에서 실현된다면, 우리는 진정한 선택을 한 것인가, 혹은 모든 선택은 이미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선택이 무의미한 것인가? 이 글에서는 다중 우주 개념과 자유의지 간의 관계를 철학적, 과학적으로 탐구해본다.

 

다중 우주와 자유의지
다중 우주와 자유의지


자유의지 vs 결정론 — 오래된 철학적 논쟁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는 고대 철학에서부터 이어져왔다.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는 우주의 모든 것은 필연적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고, 반면 에피쿠로스는 원자의 우연한 운동을 강조하며 자유의지를 옹호했다.

 

현대에 이르러 물리학은 오히려 결정론적 우주를 강화시켰다. 뉴턴 역학은 모든 운동이 인과관계로 설명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자유의지를 환상으로 취급했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과연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양자역학과 다세계 해석의 등장

20세기 초 등장한 양자역학은 이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켰다. 전통 물리학은 입자의 상태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양자역학은 입자가 동시에 여러 상태에 존재하고, 관측이 이루어지는 순간 특정 상태로 확정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불확정성은 새로운 해석을 요구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휴 에버렛(Hugh Everett)**의 **다세계 해석(Many-Worlds Interpretation)**이다. 그는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는 순간, 모든 가능한 결과가 각각의 새로운 우주에서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하지 않은 선택 또한 다른 우주에서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선택이 모두 실현된다면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다세계 해석을 따르면,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각각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고백할지 말지 고민한 순간, 고백한 현실과 하지 않은 현실이 모두 분기되어 다중 우주로 이어진다.

 

이러한 사고는 철학적으로 깊은 질문을 던진다.

  • 우리가 실제로 무언가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 아니면, 모든 가능한 결과가 실현되는 구조 안에서 ‘선택’이라는 행위는 환상에 불과한가?

 

한편, 다중 우주를 긍정하는 일부 학자들은 자유의지는 오히려 더욱 강화된다고 말한다. 선택의 폭이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분기되기 때문에, 우리는 각 선택마다 실질적인 현실을 창조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인지과학과 뇌의 결정 구조

자유의지를 둘러싼 논쟁은 물리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은 자유의지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벤저민 리벳의 실험에 따르면, 뇌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미 신경 신호를 발화시킨다. 즉, ‘우리가 결정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실제 결정보다 뒤처진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실험은 자유의지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다중 우주 이론과 결합하면, 뇌의 결정 과정 역시 수많은 현실로 나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즉, 의식적인 ‘느낌’이 없어도 선택은 현실화되며, 그것은 단지 어느 우주에서의 사건일 뿐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중 우주는 인간의 책임을 흐리는가?

만약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 동시에 다른 우주에서 실현된다면, 행위의 책임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이 질문은 윤리학적 고민으로 이어진다.

 

어떤 우주에서는 우리가 옳은 선택을 했고, 다른 우주에서는 나쁜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도덕적 책임은 이 현실에만 적용되는가, 아니면 다른 현실의 나 또한 나로서 책임이 있는가?

 

대부분의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여전히 **‘이 현실에서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경험하고 인식하는 우주는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에, 다른 현실이 존재하더라도 현재의 선택은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결론: 다중 우주는 자유의지를 재정의한다.

다중 우주는 자유의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게 만든다. 모든 선택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지 하나의 경로를 걷는 존재가 아니라 가능성을 실현하는 창조적 존재일 수 있다.

 

물리학은 인간의 결정이 물리적 법칙에 따라 제한될 수 있음을 말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우주 안에서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도 보여준다.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선택이 무의미하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이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삶의 경로는 수많은 가능성 중 우리가 걷고 있는 단 하나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고유하다.